그날의 기분, 날씨, 만나게 될 사람들. 우리가 고른 옷엔 언제나 이유가 있습니다. 오늘 내가 입은 옷, 그 속에 담긴 감정과 선택의 기록을 풀어봅니다.
1. 문득 입고 싶었던 회색 니트
오늘 아침, 창밖은 흐렸고 공기도 조금 쌀쌀했다. 그 순간, 자연스럽게 손이 간 건 회색 니트였다. 사실 특별할 것 없는 니트다. 흔한 컬러, 적당히 루즈한 핏, 목선이 살짝 올라오는 반목 디자인. 그런데 이상하게, 이 니트를 입으면 마음이 좀 정돈되는 기분이 든다.
내가 회색 니트를 좋아하게 된 건 어느 날 친구가 했던 말 때문이다. “너 회색 입으면 좀 진중해 보여.” 그 말이 괜히 귀에 남았고, 그날 이후 나는 중요한 일이 있거나 말수를 줄이고 싶은 날엔 회색 니트를 입는다. 오늘도 딱 그런 날이었다.
2. 청바지 대신 검정 슬랙스를 고른 이유
대부분의 날엔 청바지를 입는다. 그런데 오늘은, 왠지 다리를 곧게 펴고 싶은 기분이었다. 좀 더 단정하고, 중심 잡힌 느낌이 필요했던 것 같다. 그래서 선택한 건 검정 슬랙스. 허리는 살짝 여유 있고, 밑단은 길지 않게 떨어지는 세미와이드 핏.
사실 이 슬랙스는 잘 입지 않던 옷이다. 조금은 격식 있는 자리에 어울릴 것 같아 자주 꺼내지 않았는데, 오늘은 그런 거 따질 기분이 아니었다. 이건 편안하면서도 ‘선’이 있는 옷이었다. 청바지의 자유로움보다는, 나 자신을 조금 더 단단히 묶어주는 쪽을 택했다.
3. 발끝까지 말이 되는 날 – 스니커즈 대신 첼시 부츠
운동화만 신던 내가 오늘 첼시 부츠를 꺼낸 건 거의 사건이었다. 날씨도 영향이 있었고, 무엇보다 오늘은 걷는 발걸음 하나하나까지 조심스럽고 싶었다. 첼시 부츠는 발목을 단단히 감싸주고,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까지 ‘제법’이다.
거울을 보며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,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. 옷 전체가 맞춰진 느낌. 대단히 멋을 부린 건 아니지만, 스스로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옷차림이었다. 첼시 부츠가 그걸 완성해줬다. ‘오늘의 나’에게 어울리는 선택.
4. 작은 디테일 – 실버 링 하나
사람들은 옷만 본다고 생각하지만, 나는 손끝에도 기분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. 그래서 고른 건 얇고 둥근 실버 링 하나. 반짝이지 않고,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, 나만 아는 무게가 있다.
이 반지는 예전에 혼자 카페에 앉아 있다가 충동적으로 샀던 것. 별생각 없이 골랐지만, 왠지 오늘은 꼭 끼고 싶었다. 옷차림과의 연결성 때문이었을까? 아니면 단순히 ‘나한테 어울리는 하루’를 만들고 싶었던 걸까? 이유는 잘 모르지만, 중요한 건 오늘의 나를 내가 잘 알고 있었다는 것.
결론: 데일리룩은 감정의 아카이브다
우리는 매일 아침 옷장을 열고, 그날의 나를 입는다. 날씨, 기분, 해야 할 일들, 만나야 할 사람들. 그 모든 요소가 섞여 하나의 스타일을 만든다.
오늘 내가 고른 옷도, 그저 옷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에 대한 작고 조용한 선언이었다. 내일은 또 어떤 옷이 손에 잡힐까?
그 선택의 기록을 이곳, Modilow에 차곡차곡 남겨볼 생각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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